김 웅 회화의 순수성

= 바다 포구의 향기와 그 회화적 의미 =

박 준원 (미학박사,동아대학교 교수
)

'회화가 향기가 있다'함은 그림의 맛을 가리키는 얘기이다. 그림의 맛은 무엇보다도 색과 형태의 맛에서 비롯하는 것인데, 사실상 하나의 멋으로 발전하는 것이 이 맛이다. 왜냐하면 그림 속의 색과 형태에 따른 우리의 느낌을 통해 갖가지 의미들이 형성되며, 동시에 그런 의미가 바탕이 되어 하나의 회화적 의미와 깊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을 좋아한다 함은 그 속에 담긴 색과 형태의 맛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 맛에 따른 향기를 쫓아 어떤 회화적인 멋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이같은 추구가 김 웅 회화에서는 매우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표현되는 바의 내용을 세 가지 쟁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 회화의 고유성, 둘째 환원의 단순성, 셋째 정서적 향기가 그것이며, 동시에 그의 회화의 순수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1. 회화적 고유성- 회화가 지닌 고유한 특성은 미술사적 맥락에서 확인되고 있듯이 평면에 색과 형태 또는 그 이미지들을 재현하는 특성이다. 이 재현의 깊이가 르네상스 때의 다빈치 회화로부터 세잔느 및 피카소를 거쳐 오늘의 미술표현의 다양성으로 발전시키는 것인데, 근본은 평면에 재현된 내용에 달려 있으며 그 회화적 내용의 문제가 핵심이다. 이러한 핵심문제를 기본적으로 중요시한 것이 김 웅 회화이다. 그래서 통영 앞 바다 포구의 자연이 색깔있게 표현되면서 삼원색에 근거한 새로운 자연의 바다 풍광이 나타나고 평면적 자연의 회화적 의미가 강렬한 색의 대비 속에서 주어진다. 김 웅 회화에 있어 이런 풍광이 곧 회화적인 풍광이며, 회화적 고유성이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89년, 90년도 김 웅 회화초기에서의 사실 묘사 그림이 이해되는 바의 내용은 이러한 미술적 배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그 형태적 변화와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 바로 환원의 단순성 문제이다.

2. 환원의 단순성- 환원이란 것은 바꾼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바, 단순하게 바꾸어 버린다는 것에 환원의 단순성이 있다. 김 웅 회화가 지시하고 있는 특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이 같은 단순성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포구의 바다 풍광이 세세하게 묘사되기보다는 그 풍경의 빛에 따른 어떤 색과 형태의 분위기 및 냄새, 향기 표현이 중요하다. 그래서 김 웅은 그 풍광의 내용을 감성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고 이 환원의 내용을 통해 그림의 어떤 상징성을 시사코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 속에서는 평면의 분할과 더불어 형태적 축약이 중심이 된 하나의 상징적 의미가 가득 찬다. 바로 이 의미가 회화적 의미이자 환원에 따른 어떤 상징적 특질인데, 바다라는 자연의 형상에서 비롯한 특질들이 보다 평면화되면서 하나의 상징적 정서의 화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초기 때의 전통적인 유화 붓 사용대신에 나이프 작업을 시도하는 90년대 초반 작품들의 평면적 효과는 이처럼 평면에 부과된 하나의 상징적 처리로서 어떤 회화적 단순성에 대한 확인과 같은 것이다. 이같은 확인의 반복 속에서 지속적으로 어떤 바탕처럼 자리잡고 그 회화성 자체의 맛과 멋을 총체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서적 향기내용이다.

 3. 정서적 향기 - 김 웅 회화의 맛과 그 회화적 멋이 깊이는 전적으로 바다 포구의 자연 향기에 달려 있다. 이 향기는 곧 정서적 향기로서 작가 자신이 느끼는 독특한 포구의 맛과 향기를 가리킨다. 포구에 대한 추억과 회상의 내용을 말해주며, 개인적으로 심취하는 하나의 자연 풍경과 그 풍경의 빛이 나타내는 풍광 세계와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바로 이것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인 이런 대화 속에서 회화적 고유성과 환원의 단순성을 통해 하나의 생명력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하나의 생명이 상징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이를 김 웅은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유년의 눈물 훔쳐 주던 소금기 어린 바람
 ...통영 바다
 노을 속에 피어오르던 황홀한 그리움...
 유년의 저 편, 추억의 언저리...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는 삶의 파편들
 오늘과 어제를 색으로 묶는다...."  

             
(작가노트, "삶과 꿈", 95. 3)

"바람 부는 날, 바다로 갔다.
  바다는 하얀 숨 거칠게 내뿜으며...
  하얀 울림으로...
  내 어릴 적 그리운 통영 바다
  그 곳은 내 꿈의 씨를 뿌리는...
  파도는 한 자락 한 자락 나를 씻기우고...
  하얀 갈매기가 수를 놓았다...."

  
(작가노트, "그 바다 나의 노래는", 96.5)

 이처럼 바다 포구의 자연적 생명을 노래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김 웅 회화의 향기이자 멋이다. 이를테면 바다의 자연적 생명이 작가 자신의 고유한 색과 형태를 통해 하나의 회화적 향기로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말부터의 초기 회화에서 텁텁한 중간색들이 가라앉은 톤을 이용한 해안 풍경의 자연 묘사가 사실적으로 강조되고, 이후 90년대, 특히 중반부터는 전통 회화적 묘사에서 벗어나 평면의 구조적 의미가 추구되는 가운데 면의 분할과 상관된 감성적 형태의 단순과 축약이 크게 드러나며, 후반인 요즈음 그 단순, 축약의 구조적 틀과 아울러 부분적 확대나 대상 자체의 구조적 이야기가 부각되는데, 이 모든 내용이 바로 바다 향기, 회화적 향기, 정서적 향기이다. 그래서 파란 맑은 바다 색이 화면의 중심이고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회화가 사실성에서 구조적 평면성으로 나아가는 본질적 의미 가운데 중요한 것은 평면에 대한 구조적 해석이다. 이 해석이 깊이가 역사적으로 보아 알고 있듯이 오늘날의 변형된 회화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면 자체에서의 어떤 구조적 깊이로 나아가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화면 자체의 깊이는 어떤 이야기의 삽입과 부언보다는 화면 자체의 깊이가 찾아지는 평면성에 있다. 다시 말해 색 자체와 형태 자체가 화면에서 명쾌하게 구조적으로 해명될 때, 그런 평면적 깊이가 하나의 정서적 향기 차원에서 바다라는 자연의 깊이로 이어질 수 있으며 환원의 단순성을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구조적 틀 및 주제, 이야기 삽입 등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러한 본질적 평면의 구조적 해결에 달려 있다.

통영 출신으로 고집스럽게 바다 포구의 향기를 회화적으로 승화시키면서 유년의 기상을 음미하는 작가, 그 바다의 정서적 향기를 파란 맑은 색으로 바꾸어 버리면서 마치 시인처럼 어떤 상징성을 가르쳐 주는 화가, 회화의 고유성 속에서 화면의 구조적 깊이 연구에 끊임없는 관심과 사색을 표명하는 예술가, 애초의 예술적 기질을 일찍 추구하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차라리 바다 향기에 취한 채 화면에 몰두하여 회화적 유희를 즐기는 자연주의자, 새로운 화면의 구조적 해명 가능성을 예시케 하는 김 웅.

그의 작품들이 회화 자체의 고유성은 물론이고 환원의 단순성이나 정서적 향기의 내용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를 기화로 그 화면의 구조적 깊이가 명쾌하게 찾아질 것을 기대하는 마음 가득하다.